※ 녹음시 참고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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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문1.
  18세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두고 그 가난의 원인이 천성적으로 게으르거나 본인이 부족해서라며 당사자를 비난하는 시선을 가졌었다고 한다. 이같은 빈민에 대한 의미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기까지는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는데, 그 기간의 한 중심에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 있다.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어로 ‘불쌍한 자들’이란 의미를 지닌다. 원작은 프랑스의 대문호였던 ‘빅토르 위고’의 작품으로, 전체 분량이 소위 벽돌이라 불릴 만큼 두껍고 긴 대하소설이다. 프랑스의 역사와 정치, 도덕과 철학, 정의와 종교, 인간의 본성 등을 모두 아울러 담아 당시의 사회상을 지나치리만큼 상세하게 담은 책인데,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에겐 자칫 끝까지 읽기 힘든 책으로만 치부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다양한 유럽 언어로 번역되어 최고 인기 소설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빅토르 위고가 왜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넘치도록 상세히 내용을 썼는가 하니, 당시에는 출판사에서 작가들에게 단어 수에 비례하여 원고료를 지급했다고 한다. 그래서 단순히 위고뿐만이 아니라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나 ‘삼총사’ 등도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 원인이 됐다는 거다. 사실 본의 아니게 이러한 제도가 당시 프랑스 소설의 전형적 스타일을 확립하는 데 일조했다는 게 흥미로운 부분이다. 



예문2.
  다음 날에도 수영은 매점에 나왔다. 나희는 내색 없이 그녀를 건드리지 않고 손님을 응대했다. 수영은 농담처럼 집이 너무 썰렁하다고 했지만 미수도 나희도 그게 농담만은 아님을 잘 알았다. 미수가 자기 집에 와서 같이 지내자고 한 것도 그래서였다. 물론 수영은 웃으며 거절했다. 
  “이상하지. 희진이가 나랑 같이 산 것도 아니거든. 근데 이상하게 집 들어가면 추울 정도로 썰렁해.”
  “마음이 허해서 그렇죠.”
  “그런가? 난 여태까지 못 느껴본 감정이라 이상하네.”
  수영은 외로움을 거의 타지 않는 성격이었다. 스물이 되지 마자 부모님이 멀리로 이사 가고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도 허전함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최희진이 죽고 나서 느끼는 이 쓸쓸함이 낯설었다. 그녀는 멍한 기분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 수 없었다. 
  저녁 여섯 시가 좀 넘자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일몰 시간은 점차 늦어지고 있었다. 날도 점점 더워진다. 희진 때문에 한국에 돌아온 이후 한 달이 넘었다. 이제 모든 일이 끝났으니 여기 있어봤자 소용없었다. 수영은 다시 여행 작가의 본분으로 돌아가야 했다. 세계를 떠돌며 이야깃거리를 모으고 그것을 글로 써내는 일. 하지만 기이할 정도로 무기력했다. 



예문3. 
  어느덧 오후 5시에 이르러 법화사에 도착했다. 제주 남부에 위치한 법화사는 고려 시대만 하더라도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던 사찰이었다. 오죽하면 조선 초기까지도 사찰에 소속된 노비만 280명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점차 세가 기울어 18세기쯤에는 대부분의 건물이 사라진 채 사실상 폐사 상태가 된다. 20세기 초반부터 사찰로 다시 활용되면서 하나 둘 새롭게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특히 1960년 후반 법화사 터를 발굴 조사하면서 몽골과 큰 연관이 있는 장소임이 밝혀졌다. 
  대웅전은 1987년, 연못은 2001년 복원된 것인지라 옛 건물 터에 올린 사실상 새것에 가깝다. 하지만 대웅전 왼편, 그러니까 사찰 서쪽으로 쭉 들어가면 여전히 야트막한 언덕 주변으로 건물 터가 몇 개 더 보인다. 이곳에 있는 돌로 된 계단과 기단은 옛 사찰 터의 흔적으로, 근처에서는 고려 시대에 사용했던 기와들을 모아 쌓아둔 모습도 볼 수 있다. 여전히 과거의 사찰 규모를 다 복원한 것은 아닌 것이다.  
  한편 조선 태종 6년인 1406년에 명나라 사신이 조선을 방문한 뒤 제주도 법화사에 있는 원나라 불상을 명나라로 가져가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본래 원나라가 만든 것이니, 원나라를 대신하여 명나라가 세워진 이상 불상 역시 명나라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처럼 한때 명나라에도 잘 알려질 만큼 유명한 원나라 불상이 존재했던 법화사. 그렇다면 과연 몽골과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일까? 


